티스토리 뷰
목차
『거울과 빛』은 힐러리 맨텔의 토머스 크롬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헨리 8세의 최측근이자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였던 크롬웰의 마지막 나날을 다룬다. 권력의 정점에서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라, 인간 욕망의 본질과 권력의 무상함을 깊이 탐구한 작품이다.
1. 권력의 절정 – 크롬웰이 쥔 칼날
1536년 5월 19일, 런던탑에서 앤 볼린이 처형된다. 그날, 토머스 크롬웰은 자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 역시 언젠가 이 자리에서 목을 내놓아야 할 운명을 예감했을까? 『거울과 빛』은 앤 볼린의 처형 직후부터 시작된다. 이제 크롬웰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강한 인물이다. 헨리 8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그는 왕국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고 있으며, 자신의 출신이 미천하다는 점을 조롱하는 귀족들을 하나씩 제거해 왔다. 하지만 크롬웰이 믿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다. 그는 더 나은 왕국, 더 강한 왕좌를 만들고자 한다. 크롬웰은 실용주의자다. 그는 귀족들의 혈통보다 유능한 행정가들을 신뢰하며, 성직자들의 부패를 경멸한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을 해체하고, 국고를 채우며, 헨리 8세의 절대 권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 모든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뜻에 따라 실행한다는 점이다. 헨리 8세는 변덕스럽고 잔인하며, 언제든 충성스러운 신하를 배신할 수 있는 인물이다. 크롬웰은 누구보다 왕을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언젠가 헨리의 눈 밖에 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또한 국제 정치 속에서도 능숙하게 움직인다.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사이에서 잉글랜드의 위치를 조정하며, 스페인의 위협을 견제한다. 그는 한때 친구였던 이들을 배신하고, 필요하다면 가차 없이 숙청을 단행한다. 하지만 그는 정말 냉혈한이었을까? 『거울과 빛』을 읽다 보면, 우리는 크롬웰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가 가진 두려움, 후회, 그리고 인간적인 연민. 그는 단순한 권력자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한 인간이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도달한 순간, 그는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2. 거울 속의 얼굴 – 크롬웰이 본 진짜 자신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을 어떻게 볼까? 그리고, 그 거울 속의 모습은 언제부터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까? 크롬웰은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잉글랜드의 최고 귀족들과 어울리지만, 여전히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천한 피’를 가졌다고 비웃는 이들에게 끝없이 증명해야 했다. 자신이 누구보다 유능하다는 것을. 자신이 누구보다 왕을 잘 보좌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때때로 자신이 만든 권력의 세계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가 정말로 충성하는 것은 헨리 8세인가, 아니면 자신이 꿈꾸는 잉글랜드인가? 왕의 변덕을 감당하며, 그는 스스로를 설득해야 했다. ‘나는 왕을 위해 일한다. 왕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하지만 크롬웰은 누구보다 헨리 8세가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헨리는 사랑했던 여인도 하루아침에 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고, 가장 신뢰했던 신하도 처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울 속의 크롬웰은 점점 변해간다. 젊었을 때 그는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피곤하고, 회의적이며, 때때로 자신의 결정이 옳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수도원 해체로 인해 길거리에 내몰린 수도사들, 자신의 명령으로 처형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키운 젊은 정치가들이 그를 위협하는 순간들. 그는 이 모든 것이 과연 정당했는지를 고민한다. 거울 속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왕을 위해 헌신한 충성스러운 신하였을까, 아니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타협하고 배신을 거듭한 정치인이었을까? 그는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3. 빛의 종말 – 크롬웰의 몰락과 최후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특히 헨리 8세의 신하라면 더욱 그렇다. 크롬웰의 몰락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왔다. 그는 앤 불린을 몰락시켰고, 그녀를 대신해 제인 시무어를 왕비로 만들었다. 하지만 제인 시무어가 죽고 난 후, 헨리 8세는 다시 결혼을 원했다. 크롬웰은 클레브스의 앤과의 결혼을 추진하지만, 헨리는 그녀를 보자마자 싫어한다. 왕의 불만은 크롬웰에게 향했고, 그의 적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540년, 그는 반역죄로 체포된다. 왕이 직접 사인을 한 문서가 도착하고, 크롬웰은 런던탑으로 끌려간다. 한때 그가 조종했던 법과 권력이 이제는 그를 향해 움직인다. 그는 자신이 왕에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까지 헨리가 그를 구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왕은 더 이상 그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처형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피로 얼룩졌는지 알기에, 이제 자신의 피가 흘러야 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그는 끝까지 기품을 잃지 않으며,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몰락이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끝이며, 정치와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가장 강렬한 순간이다.
결론
『거울과 빛』은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토머스 크롬웰은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이며, 힐러리 맨텔은 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우리가 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우리는 크롬웰의 삶을 통해 묻는다. 권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을 쥔 자는 무엇을 보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거울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정말로 우리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인가?